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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그릇에 담긴 보배

출처 : 유기성 목사님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pastor.yoo?hc_location=stream)



1. 저 자신에 대하여 깊은 좌절과 실망, 열등감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나는 왜 이 모양 이꼴일까?” “나는 언제나 변할까?”

2. 그런데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면서 이 생각이 매우 잘못된 생각임을 알데 되었습니다. 우리는 원래 질그릇같은 존재이기 “주여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고백하고 인정하면 충분한 것입니다.

3.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질그릇같은 존재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보배이신 주 예수님께서 임하셨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고후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4.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얼굴이 보배를 가진 사람의 얼굴이 아닙니다. 
마음도 말도 행동도 보배를 가진 사람 같지 않습니다. 
질그릇같은 자신 보지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5. 여러분, 짜장면을 먹을 때 짜장면을 보나요 그릇을 보나요?
보석이 담긴 상자를 받았을 때, 보석을 보나요 상자를 보나요?
옛날에는 돈을 신문지에 싸 가지고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신문지를 보는 사람이 누가 있었겠습니까? 신문지에 싸였지만 속에 든 돈을 보지 않습니까?

6. CCM 작사가 박용주 씨는 [질그릇에 담긴 보배]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자신에 대한) 무력감은 그리스도를 붙잡는 재료이다. 무력감은 느끼기 싫지만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느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그리스도를 의지한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이끄신다. 

7. 우리가 질그릇 같아서 문제가 아니라 질그릇같은 존재임을 몰라서 문제이다.
애굽 왕자 모세는 자신의 힘과 열정으로 동족들을 구원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살인자로 광야로 도망가야 했다. 하나님께서 힘을 빼신 것이다. 광야에 내 모시고도 하나님은 여전히 모세에게 지나치게 힘이 들어갔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40년 동안 그대로 두셨다. 

8. 하나님께서 모세를 다시 부르셨을 때, 모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출 3:11). 
40년 광야 연단은 오직 모세로 하여금 자신이 질그릇같은 존재임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필요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대답한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9. 하나님께는 자신이 질그릇인 줄 몰랐던 왕자 모세는 필요 없었다.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신발을 벗는 모세가 필요했다. 영웅 모세는 필요 없다. 주님만 바라보는 모세가 필요했다. 주님의 이름 만 내세을 수 밖에 없는 이름 없는 모세가 필요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는 말씀으로 충분한 모세를 하나님은 기다리셨던 것이다.”

10. 그러므로 우리가 질그릇 같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이 질그릇 같기에 더욱 주님만 바라보게 되었다면 오히려 기뻐할 일입니다. 
‘너무 약하고 악한 나’이기에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십자가 복음이 기쁨이 되었고 24 시간 예수님만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 올려보내지 마옵소서" (출 33:15)라고 고백한 것처럼 주님과의 동행에 전심을 쏟게 하셨습니다. 

11. 주님은 우리를 금강석이 되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담은 질그릇이 되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질그릇을 보배로 만드시겠다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질그릇 안에 보배로 임하시겠다 하셨습니다.

12. 보배이신 주 예수님깨서 질그릇 같은 우리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우리 안에 임하여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질그릇으로 살면 됩니다. 자신이 보배로 변화되지 않는다고 부끄러워 하고 탄식하고 좌절하지 말고 오직 질그릇같은 우리 안에 보배이신 주 예수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12. 우리가 회개할 때도 질그릇같은 자신을 보지 말고 보배이신 주 예수님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질그릇을 보지 말고 보배를 보아야 합니다.

13. 자신을 보면 수치스럽고 절망적이지만 성령의 근심을 깨달으면 그런 절망 중에도 감사가 느껴집니다.
엡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14. 성령의 근심이 있다면 주님은 나를 버리지 않은 것입니다.
떠나도 벌써 떠났을 것 같은데도 주님은 여전히 함께 하시면서 근심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15. 보배이신 주님을 바라보면 좌절하고 절망할 상황에서도 우리 영은 기쁘고 감사하고 희망이 넘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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